working speed in ai era

마차의 시대는 끝났다

1865년, 영국 의회는 진지하게 이런 법을 통과시켰다. 자동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60야드 앞서 걸어가야 한다. 도시에서는 시속 3km, 교외에서는 시속 6km. 자동차의 속도를 마차 수준으로 제한한 것이다. 이유는 다양했다. “마차보다 위험하다”, “말이 놀란다”, “도로가 마차용으로 만들어졌다.” 이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은 30년 넘게 유지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웃기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2026년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더 많이 하면 더 많은 가치를 받을 수 있을까

AI 도구를 쓰면서 업무 속도가 빨라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코드 리뷰가 빨라지고, 문서 작성이 빨라지고, 데이터 분석이 빨라졌다. 자연스럽게 이런 기대가 생긴다.

“전에는 하루에 3개 하던 일을 이제 10개 할 수 있으니, 그만큼 더 인정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생각은 자연스럽지만, 함정이 있다. 마차 10대를 운행하는 것과 자동차 1대를 운행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다. 마차 10대를 모는 사람은 마부 10명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자동차 1대를 모는 사람은 운전사 1명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동차가 열어준 가능성은 “마차를 더 많이 모는 것"이 아니라 “마차로는 갈 수 없었던 곳에 가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AI로 더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순간,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마차 노선을 반복 주행하는 셈이 된다.

속도가 아니라 도달 거리가 달라진 것이다

마차에서 자동차로의 전환이 가져온 진짜 변화는 속도가 아니었다. 도달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진 것이다. 마차로는 하루에 40km를 가던 것을, 자동차로 400km를 갈 수 있게 됐을 때, 사람들은 “40km를 10번 왕복하자"가 아니라 “400km 밖에 있는 새로운 시장에 가자"고 생각했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코드를 빨리 짜준다고 해서, 같은 수준의 코드를 10배 많이 짜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이전에는 시도조차 못 했던 규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 핵심이다.

  • 혼자서는 일주일이 걸리던 프로토타입을 하루 만에 만들어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 한 사람이 커버하기 어려웠던 범위의 코드베이스를 이해하고 개선할 수 있다
  • 전문 영역이 아닌 분야에서도 합리적인 수준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은 더 빠르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을 하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Claude를 이렇게 쓴다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1년간 AI 도구를 쓰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일의 속도가 아니라 일의 밀도"였다고. 같은 시간에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일러플레이트와 반복 작업에 쓰던 시간이 설계와 의사결정에 쓰이면서 같은 시간에 더 깊이 하게 되었다. 코드를 타이핑하는 시간이 줄고, 코드를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것이 바로 마차에서 자동차로의 전환이다. 같은 거리를 더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가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의 질이 달라진 것이다.

마차 기준으로 짐을 싣는 사람들

그런데 현실에서는 많은 조직과 개인이 여전히 마차의 기준을 적용한다.

하나만 깊이 들여다보자. “AI로 코딩 속도를 올려서 더 많은 티켓을 처리하세요.”

이 말의 전제는 Jira 티켓 처리량이 생산성이라는 것이다. 마차가 하루에 몇 번 왕복했는지로 운송 효율을 따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AI를 실제로 깊이 써본 사람이라면 안다. AI가 코드를 빠르게 짜주는 순간, 진짜 병목은 “코딩 속도"가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요구사항의 모호함, 불필요한 기능, 잘못된 추상화—이런 것들이 진짜 병목이었다. AI가 코딩을 가속하면, 코딩이 아닌 곳에서 시간이 낭비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그때 질문은 “티켓을 몇 개 더 처리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티켓들이 정말 필요한 일인가“가 되어야 한다.

비슷한 패턴은 어디에나 있다. “AI를 써서 보고서를 더 빨리 쓰세요"는 보고서라는 형식 자체를 재고하지 않는다. 실시간 대시보드가 대체할 수 있고, AI가 인사이트를 직접 요약해줄 수 있는데, 왜 여전히 파워포인트 20장을 만들어야 하는가? “AI를 활용해서 기존 프로세스를 효율화하세요"는 마차 바퀴에 기름을 치는 것과 같다. 자동차가 있는데 왜 마차 바퀴의 마찰을 줄이고 있는가?

속도의 재정의

일하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가지 관점이 있다.

마차 관점의 속도: 같은 일을 더 빨리 한다. 보고서를 2시간이 아니라 30분에 쓴다. 코드 리뷰를 하루가 아니라 1시간에 끝낸다. 이 관점에서 AI는 “빠른 마차"다. 기존의 일을 가속하는 도구.

자동차 관점의 속도: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한다. 프로토타입에서 사용자 피드백까지의 사이클을 일주일에서 하루로 줄인다. 한 사람이 풀스택으로 서비스를 운영한다. 경쟁사보다 먼저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대응한다. 이 관점에서 AI는 “자동차"다. 가능성의 범위를 바꾸는 도구.

“일하는 속도"를 말할 때, 우리는 어떤 속도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마차에서 내리는 용기

자동차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마차에서 내려야 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마차에는 익숙함이 있다. 마차의 속도로 일할 때의 리듬, 마차의 용량에 맞춘 업무 단위, 마차의 경로로 최적화된 프로세스. 이 모든 것이 오랜 시간 쌓여온 것이고, 바꾸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더 어려운 것은, 마차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환경에서 자동차를 타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티켓을 더 많이 처리하세요"라는 환경에서 “이 티켓들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보고서를 빨리 쓰세요"라는 환경에서 “보고서 대신 대시보드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갈등을 만든다.

하지만 산업혁명의 교훈은 명확하다. 마차의 속도를 고수한 사람들은 도태되었다. 자동차를 타고 마차의 속도로 달린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은 것은, 자동차가 열어준 새로운 가능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 사람들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작게 시작하면 된다. 이번 주에 하는 일 중 하나를 골라서, “이 일을 AI 없이 하던 방식"과 “AI로 근본적으로 다르게 할 수 있는 방식"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보고서를 더 빨리 쓰는 것이 아니라, 보고서가 전달하려는 인사이트를 AI가 직접 뽑아주게 하는 것. 코드를 더 빨리 짜는 것이 아니라, AI에게 아키텍처 설계를 먼저 검증받고 정말 필요한 코드만 짜는 것. 마차에서 내리는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이 일을 왜 이렇게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한 번 더 던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리더의 역할

이 전환에서 리더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리더가 마차의 기준을 유지하면, 팀 전체가 자동차를 타고도 마차의 속도로 달린다.

  • AI를 써서 더 많이 하라고 말하는 리더는 마차의 짐을 자동차에 싣는 것이다
  • AI를 써서 다르게 하라고 말하는 리더는 자동차가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리더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1. 우리 팀이 하는 일 중, AI 때문에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일은 무엇인가?
  2. AI 덕분에 이제 시도할 수 있게 된,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은 무엇인가?
  3. 우리의 성과 측정 기준은 마차 시대의 것이 아닌가?

“더 빠르게"가 아니라 “더 멀리“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도 마차 노선을 도는 것이 의미 없진 않다

여기서 한 가지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업무가 재정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양적 개선이 질적 변화의 전 단계일 수 있다. 마차로 같은 노선을 10번 왕복하던 사람이 자동차로 10번 왕복하면, “이 경로 자체가 비효율적이다"는 인사이트가 생긴다. 속도가 빨라지면 반복의 밀도가 높아지고, 반복의 밀도가 높아지면 패턴이 보인다. 기존 업무를 AI로 빠르게 반복하는 과정에서 “이 일 자체가 필요 없다"는 깨달음이 올 수 있다. 처음부터 “다르게 하라"보다 “빠르게 하면서 배워라“가 현실적인 첫 걸음일 수 있다.

또한, 모든 사람이 경로를 바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티켓들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조직에서 극소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위치에 있고, 그 안에서 AI를 활용해 같은 일을 더 빠르게 하는 것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마차 노선을 자동차로 10배 빠르게 도는 것이 비용 절감이라는 실질적 가치를 만든다면, 그것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붉은 깃발법도 맥락이 있었다. 초기 자동차는 실제로 위험했고, 보행자 사고가 빈번했다. AI도 할루시네이션, 보안 취약점, 저작권 문제 등 실제 리스크가 있다. 속도를 늦추는 것이 항상 보수적 저항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합리적인 안전 규제이기도 하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인정하더라도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붉은 깃발법은 결국 폐지되었고, 마차는 사라졌다. 양적 개선에 머무르는 것을 선택이 아닌 목적지로 삼는 순간, 우리는 자동차 시대에 마부 자격증을 갱신하는 사람이 된다.

정리

  • AI 시대에 “일하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말은, 같은 일을 더 빨리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어야 한다
  • 마차의 기준으로 자동차를 평가하면, 자동차의 잠재력은 영원히 발휘되지 않는다
  • AI를 써서 기존 업무를 가속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변화는 업무 자체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 “더 많이"가 아니라 “더 다르게“를 고민하는 사람과 조직이 이 전환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 자동차가 나왔을 때 붉은 깃발법을 만든 사람들을 우리는 웃지만, 지금 AI 앞에서 마차의 기준을 고수하는 우리 자신은 웃지 못할 수도 있다

참고자료

  • Locomotive Acts - Wikipedia — 1865년 영국에서 제정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의 역사. 자동차 앞에 붉은 깃발을 든 사람이 60야드 앞서 걸어야 했고, 도시에서는 시속 3km, 교외에서는 시속 6km로 속도가 제한되었다. 이 법은 30년 넘게 유지되다 1896년에 폐지되었다.
  • Red flag traffic laws - Wikipedia —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규제가 어떻게 적용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맥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