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있는 일에 집중하라.”
요즘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말이다. OKR을 세우든, 스프린트 플래닝을 하든, 우리는 항상 “가장 임팩트가 큰 일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 조언이 “작은 일은 하지 마라"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
임팩트가 없어 보이는 작은 일들을 꾸준히 끝내야, 임팩트가 큰 일을 할 수 있다.
왜 그런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정리되지 않은 집에서는 일할 수 없다
정신의학에서는 환경과 정신 상태의 연관성을 오래전부터 연구해왔다. 집이 어수선하면 머릿속도 어수선해진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인지 자원이 소모된다는 뜻이다.
업무도 마찬가지다. 처리되지 않은 작은 일들—답장하지 않은 메일, 미뤄둔 리뷰 요청, 갱신해야 할 문서—이 계속 쌓여 있으면, 우리 뇌는 이것들을 “미완료 작업"으로 백그라운드에서 계속 추적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Zeigarnik 효과라고 부른다. 완료되지 않은 일은 완료된 일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문제는 이 백그라운드 프로세스가 공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지 자원을 소모한다. 그래서 정작 큰 일을 하려고 앉으면, 이미 뇌는 지쳐 있다.
GTD의 통찰: “Mind Like Water”
David Allen의 GTD(Getting Things Done) 방법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Mind Like Water”**다. 무술에서 온 이 개념은, 물이 어떤 자극에도 그 크기에 정확히 맞게 반응한 후 다시 고요해지는 것을 말한다. 과하게 반응하지도, 과소 반응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미완료 작업들이 머릿속에 있으면 물이 고요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거 해야 하는데”, “이것도 확인해야 하는데”—이런 생각들이 계속 파장을 일으킨다. Allen은 이것을 “open loops"라고 부른다. 닫히지 않은 고리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아간다.
그래서 해결책은 open loops를 머릿속에서 꺼내 신뢰할 수 있는 외부 시스템에 담는 것이다. 할 일 목록이든, 캘린더든, 노트든. 뇌는 “기억해야 할 것"과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외부 시스템에 맡겨야 비로소 물이 잔잔해진다.
작은 일들을 체계적으로 처리하고 기록하는 것은, 큰 일에 집중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이다.
엔지니어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바
엔지니어로서 이 원리는 더욱 명확하게 느껴진다.
기술 부채는 인지 부채다. “나중에 고쳐야지"라고 남겨둔 TODO 주석, 임시방편으로 넣은 하드코딩, 리팩토링해야 할 레거시 코드—이것들은 단순히 코드베이스의 문제가 아니다. 그 코드를 다룰 때마다 추가적인 인지 부하가 발생한다. “여기 건드리면 저기서 터지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항상 배경에 깔린다.
온콜(On-call)의 무게. 운영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알림이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깊은 집중 상태에 들어가기 어렵다. 작은 운영 이슈들을 꾸준히 자동화하고 해결해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큰 아키텍처 개선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든다.
컨텍스트 스위칭 비용. Gloria Mark(UC Irvine)의 연구에 따르면, 업무가 중단된 후 원래 작업으로 돌아가기까지 평균 23분 이상이 걸리며, 그 사이에 약 2개의 다른 작업을 거치게 된다. 자잘한 일들이 계속 치고 들어오면, 우리는 하루 종일 “다시 집중하려는 중"인 상태로 보내게 된다.
작은 일이 큰 일의 씨앗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관점이 있다. 작은 일은 단순히 “치워야 할 것"이 아니다. 큰 일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코드 리뷰를 하다가 아키텍처의 근본적인 문제를 발견한다. 에러 로그를 정리하다가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병목을 찾아낸다. 문서를 업데이트하다가 “이 부분, 아예 새로 설계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임팩트가 커 보이지 않는 1%의 업무들. 하지만 이 1%를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거였구나” 하는 통찰이 온다. 큰 임팩트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작은 일들의 지층에서 솟아오른다.
창의성의 준비운동
또 하나. 작은 일을 처리하면 머리가 상쾌해진다.
이것은 단순히 “인지 부하가 줄어든다"는 것 이상이다. 작은 일을 완료하는 과정 자체가 뇌를 활성화하는 준비운동이 된다. 워밍업 없이 바로 전력 질주하면 부상당하기 쉽다. 마찬가지로,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가장 어려운 문제에 바로 뛰어들기보다, 작은 일 몇 개를 처리하면서 뇌를 깨우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때가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큐베이션(incubation) 효과와 연결짓기도 한다. 의식적으로 어려운 문제에서 잠시 떨어져 다른 일을 하면, 무의식이 배경에서 문제를 계속 처리한다. 그래서 작은 일을 하다가 갑자기 “아!” 하고 큰 문제의 해결책이 떠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은 일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창의적 사고의 발판이다.
디테일이 완성도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작은 일을 꾸준히 처리하는 습관은 단순히 “큰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일상의 디테일을 챙기는 사람은, 큰 일에서도 디테일을 챙긴다.
작은 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꼼꼼함, 체계성, 완결성에 대한 감각—이것들이 큰 프로젝트에서도 발휘된다. 작은 일을 대충 처리하는 습관은, 어느새 큰 일도 대충 처리하는 습관으로 이어진다.
예상되는 반론들
이 글을 읽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예상되는 비판과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눠본다.
“그거 회피 행동 아니야?”
비판: 중요한 일을 피하려고 책상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Productive procrastination"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어려운 프로젝트를 앞두고 갑자기 이메일 정리가 하고 싶어지고, 슬랙 알림 설정을 최적화하고 싶어진다. 작은 일 정리를 핑계로 진짜 중요한 일을 미루는 것 아닌가?
내 생각: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리"와 “회피"는 구분할 수 있다. 진짜 정리는 시스템화된 루틴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30분간 인박스를 정리한다면, 그건 정리다. 반면 중요한 발표 준비를 앞두고 갑자기 3시간 동안 폴더 구조를 재편한다면, 그건 회피다. 핵심은 정리가 정해진 시간에 예측 가능하게 일어나느냐, 아니면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 즉흥적으로 일어나느냐다.
“완벽히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면 영원히 못 시작해”
비판: “준비가 다 되면 시작하겠다"는 마인드셋의 함정이 있다. 기술 부채 다 갚고, 문서 다 정리하고, 테스트 커버리지 올리고… 이러다 영원히 새 기능 개발 못 한다. 어느 정도 불완전함을 안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생각: 동의한다. 그래서 정리의 목표는 “완벽함"이 아니라 “충분한 명료함"이다. 모든 기술 부채를 갚을 필요 없다. 다만 “이 부분은 나중에 손봐야 해"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기록해두면 된다. 머릿속에서 떠돌게 두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불완전함을 “안고 가는 것"과 “방치하는 것"은 다르다. 의식적으로 선택한 불완전함은 인지 부하를 만들지 않는다.
“스타트업은 그렇게 일 못해”
비판: 때로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하나에 올인해야 한다. 기술 부채를 감수하고, 문서화를 미루고, 일단 달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생존이 먼저다. 정리할 여유가 있다는 건 이미 여유가 있다는 뜻 아닌가?
내 생각: 그런 순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략적 선택"이지 “기본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스프린트를 할 수 있는 건 평소에 마라톤 페이스로 뛰어왔기 때문이다. 늘 전력 질주만 하면 번아웃되거나, 만성적인 부채 속에서 점점 느려진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면, 급할 때 부채를 지는 건 괜찮지만 그 부채가 있다는 것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갚지도 못한다. 최소한의 기록은 필요하다.
“작은 일 100개가 오히려 큰 임팩트일 수도 있잖아”
비판: 작은 개선 100개의 누적이 하나의 큰 프로젝트보다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다. 매일 1%씩 나아지는 것의 복리 효과. “임팩트 없는 작은 일"이라는 프레이밍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내 생각: 정확히 그렇다. 사실 이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임팩트 없는 작은 일"이라고 불리는 것들—코드 리뷰, 문서 정리, 작은 버그 수정, 테스트 보완—이것들은 겉으로 보기에 임팩트가 작아 보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첫째, 작은 개선들이 복리로 쌓인다. 둘째, 이 과정에서 큰 임팩트의 씨앗을 발견한다. “임팩트 기반으로 일하라"는 조언이 “작은 일은 하지 마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작은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이 큰 임팩트를 만들 기회를 더 많이 발견한다.
결론: 임팩트는 어디서 오는가
임팩트 기반으로 일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임팩트 있는 일"이 어디서 오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큰 임팩트는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작은 일들을 꾸준히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코드 리뷰를 하다가 아키텍처 개선의 실마리를 찾고, 에러 로그를 정리하다가 시스템 전체의 병목을 발견한다.
또한 작은 일을 처리하면 머리가 상쾌해진다. 인지 부하가 줄어들 뿐 아니라, 뇌가 활성화되고 창의적 사고의 준비가 된다. 작은 일은 큰 일의 방해물이 아니라 발판이다.
정리하자면:
- 작은 일을 무시하지 마라. 거기서 큰 임팩트의 씨앗을 발견한다.
- 작은 일을 끝내두면 머리가 상쾌해진다. 그래야 창의적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다.
- 디테일을 챙기는 습관이 큰 일의 완성도로 이어진다.
- 단, 회피 행동과 구분하라. 정리는 루틴으로, 급할 때 즉흥적으로 하면 회피다.
- 완벽을 기다리지 마라. “충분한 명료함"이면 충분하다.
“임팩트에 집중하라"는 조언은 “작은 일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작은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이 큰 임팩트를 만들 기회를 더 많이 만난다.
그러니 오늘 하루, 임팩트가 작아 보이는 일이 있다면 피하지 말고 해보자.
그 안에 내일의 큰 일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