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라는 말이 사방에서 들리고 있다. 퇴사 사유로, 이직 사유로, 휴가 사유로, 인생에 대한 어려움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다들 한 번씩은 들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번아웃인 상태가 아닌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옆에서 번아웃 이야기를 들을 때,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크게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느낀 적도 많다. 여러가지 시도해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만 번아웃에 빠진 사람은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이렇게 글을 써본다.

“나는 번아웃이 온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의심어린 눈초리로 쳐다보고 진짜냐고 물어본다. 실제로 그렇고, 나는 번아웃이 온 적이 없다. 명확하게 다시 한 번 표현하자면, 번아웃이 온 적이 없고, 번아웃과 비슷한 현상이 나오는 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안다고 생각하고, 이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괄식을 선호하지만 이 이야기만큼은 미괄식으로 써본다. 차근차근 글을 읽으면서 암기과목처럼 받아들이는 것 대신에 번아웃에 대해서 이해하고 이를 다들 이겨내길 바란다.

먼저 인터넷이 크게 발달하기 이전 시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90년대, 2000년대의 뉴스를 기억한다. 수많은 스포츠 선수, 예술가, 그리고 직장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돌던 말이 있다. 슬럼프, 매너리즘이다.

뉴스에서 기억나는 건 박찬호와 같은 프로선수들이 중간중간 실력이 늘지 않는 슬럼프에 빠졌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공군 군입대를 앞두고, 공군이 휴가가 많은 이유에 대해서 들었다. 동일 업무를 반복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공간 같은 일을 반복할 때 매너리즘에 빠지기 때문에 더 잦은 휴가로 변화를 주어 일상에 활력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번아웃이라는 말이 더욱 많이 나오고 있다. 왜 그럴까? 그때와 지금은 도대체 무엇이 다르고, 그리고 더이상 슬럼프와 매너리즘은 없는 것일까?

슬럼프와 매너리즘의 시절에는 주변에 존재하는 기회와 가르침이 그사람이 배울 수 있는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좋은 선배를 만나고, 좋은 사수를 만나고, 그리고 그 한사람을 통해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내가 움직이는 시간에 만난 1명에게 필요한 것들을 배우게 된다. 이는 다시 표현하면 이런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환경에 있던가, 배울 만한 수단(책, 비디오)이 없다면 제자리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만한 방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운좋은 깨달음이 올때까지 그 자리에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며 있어야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생각해보자. 지금은 배우고자하면 배울 수 있는 것을 바로 찾을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 스마트폰을 통해서, 랩탑을 통해서 빠르게 내가 원하는 걸 찾고 배울 수 있다. 유튜브를 통한 강좌만 보더라도 스탠포드 대학의 수업을 들을 수 있고, Cousera를 통해 내가 배우고 싶은 전문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심지어 학위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정보가 많아도 너무 많다. 나의 시간, 나의 공간, 내가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은 한정적이다. 나의 뇌 용량은 전세계에 있는 컴퓨팅 용량을 따라갈 수 없다. 그만한 프로세싱 속도도 나오지 않는다. 수많은 input은 존재하지만 나의 output은 제한적이다. 세상에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데, 그걸 처리하기 위한 나의 뇌가 따라오질 못할 뿐이다. [Generated image from DALL-E-3]

문제는 여기서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정보가 많아도 너무 많다. 나의 시간, 나의 공간, 내가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은 한정적이다. 나의 뇌 용량은 전세계에 있는 컴퓨팅 용량을 따라갈 수 없다. 그만한 프로세싱 속도도 나오지 않는다. 수많은 input은 존재하지만 나의 output은 제한적이다. 세상에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는데, 그걸 처리하기 위한 나의 뇌가 따라오질 못할 뿐이다.

이전에는 작은 input으로 output을 더 만들어내기 위한 시대였다면, 지금은 큰 input에서 적절하게 최적화된 output을 내는 시대이다.

지금의 현대인들은 회사에서 더 큰 output을 나지 않을 때, 탓할 것은 자신이 처리하지 못하는 input에 신경쓰고, 밤낮없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회사에서도 더 잘하기 위한 방법과, 해야할 일들을 산더미같이 쌓여있는데, 더 잘되지 않을 때는 이만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있다.

그럼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가 처리해야하는 input은 우리가 정말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지? 물론 업무 자동화나, 프로세스 개선등의 일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일의 한 형태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린 개선하고, 일해야하는 게 넘쳐나고, 이를 수행하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계속 할 수 있다.

그럼 다시 끊임없이 계속 쉬지 않고 달려나가면 어떻게 될까? 이때 번아웃이 온다고 생각한다. 몰입에 빠진 사람들은 때때로 재충전없이 달려가고 있다. 이를 통제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고, 이게 중요하다고 학습한 적도 없다. 매일매일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울트라마라톤을 하기도,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몇시간동안 힘든 상태를 유지하는 운동이다. 몇시간 동안 가장 멀리 가는 방법은 숨이 가쁘기 전 상태로 꾸준하게 달리는 것이다. 중간에 전력질주를 하면 바로 쉬어야하는 상황이 찾아올거고, 이땐 쉬었다가 다시 호흡이 찾아왔을 때 달려간다.

번아웃을 이겨내는 방법, 그리고 번아웃이 오지 않는 상태를 조절하는 방법도 같다고 생각한다. 매일 적절한 텐션으로 계속 공부하고 일을 한다. 딱 살짝 숨찰 정도로 한다. 너무 피곤한 상태가 된다면 다음날에 오늘 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없게 되고 갈 수 있는 거리가 짧아진다. 그리고 번아웃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를 다시 표현하여 숨찬 상태에서 달리기를 한다면, 얼마못가서 쓰러지고 만다.

숨차오른 상태처럼 번아웃에 빠져서 집중이 되지 않을 때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쉰다, 혹은 멍때린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머릿속에 생각이 넘쳐날때는 글로 옮겨본다. 알고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내가 숨찬 상태에서 다시 평상시 호흡을 가진 상태로 만들어주어야한다. 그래야만 더 좋은 생각, 더 좋은 선택, 더 나은 삶은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들어오는 input을 제어해야한다. 나의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서는 input이 들어오게 되면 나는 과부하에 빠져서 오히려 기존의 퍼포먼스도 안나오게된다. CPU라고 생각해도 좋다. CPU 쓰로틀링이 걸리면 오히려 기존에 처리하던 속도도 느려진다. 이유는 들어오는 input에 대해서 스케쥴링하고, 마킹하고, 처리하다가 다시 스케쥴링하려 가야하는 시간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엔 재부팅이 필요한 상태로 가는 것이다. 내가 처리할 수 있는 가용영역을 넘어서면 오히려 기존의 성능도 안나오는 상태가 된다.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계속 인지하면서 들어오는 input을 제어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위와 같은 내용에 동의할 수도 있고,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여태까지 수없이 주어지는 일을하면서 압박감을 가지기도 하고, 고민도 하면서 어떻게 이겨냈는지 여러번 생각하고 곱씹어 보았다.

몇몇은 이미 내게 이런 이야기들 듣기도 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기억에 남아 이렇게 글로 남겨보았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번아웃에 매몰되지 않고 이겨내길 바란다.